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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화의 가치 인식 제고
제주문화의 가치 인식 제고
  • 성정화 기자
  • 승인 2020.0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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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수정(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며칠 전 옹기와 굴을 보기위해 대정을 방문하였다. 필자가 20대 당시 도요지를 조사한답시고 대정과 고산일대를 부지런히 발품 팔았던 경험이 있기에 도요지 흔적을 찾아 물어보면서 다녔던 여러 추억이 생각나 웃음이 절로 났다.

당시에 비해 지금은 옹기를 주제로 한 옹기전수회관, 옹기박물관, 옹기마을이 눈에 보이고, 제주옹기장이란 이름으로 무형문화재들이 터를 잡고 있지만, 급속히 도시화된 마을 경관에서 과거에 느꼈던 옹기에 대한 아련함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옹기의 역할은 생활용기에서 더욱 소외되면서 플라스틱, 스텐, 유리, 도자에 밀려 집에서도 어쩌다 볼 수 있는 귀한 골동품이 되었다. 옹기를 도내 곳곳 팔러 다니며 한 밑천을 삼았던 수익수단의 기능을 상실한 지도 50여년이 흘러갔다. 또한 마을의 전통적 특성을 살려 랜드마크로 가져가고 싶어 하지만 마음만큼 아주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옹기에 대한 기록은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이제현의 시문집인익재난고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제현은 고려시대 탐라에서 불러지던 속요(俗謠)를 칠언절구의 해시(解詩)로 기록하였는데, 제주도민들은 생산품이 별로 없어 전라도지방에서 장수들이 옹기와 쌀을 팔러오면 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은 조선시대 중종 15(1520)에 제주에 유배 왔던 충암 김정(金淨)이 남긴제주풍토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은 김정이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풍토와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는데, 제주에는 사기, 도기, 유철이 나지 않고, 나무통으로 물을 길러 다니고 있었다고 하였다.

물론 제주 곳곳에서 탐라국시대 이전 유적부터 옹기의 전신인 생활 토기들이 지역적 특성과 시기를 드러내며 발굴되고 있고, 그 토기들의 용도는 생활용기, 제사용기 등 다양한 곳에서 그 쓰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기록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옹기인 허벅, 물항아리, 고소리, 단지 등 대부분은 500여년의 역사를 지녔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중세와 근·현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활필수품이자 문화의 지표가 되었다. 또한 철저한 분업형 제작과정은 하나의 옹기를 완성하기 위해 공동체의식인 수놀음 정신을 반영하여 척박한 환경에서 서로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간직해 왔다.

우리가 경험해 온 옹기문화는 최근 점점 헤이 해져 가는 공동체사회에서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인문정신문화인 동시에 지역문화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우리 제주 역시 상징적 문화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활용상품으로 가져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문화는 전통문화의 가치가 내재된 채 인문·자연적 환경의 변화에 순응해왔다. 그럼에도 세계는 자국의 전통문화를 문화의 맹아로 삼아 그 지역공동체 안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문화정책으로 발 빠르게 포장하고 있다.

문화의 특수성이란 차별성 때문에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이 되는 시대라고 하고 있고, 그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는 연금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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